다이오드의 ‘항복’에는 왜 두 가지 물리가 있을까
작은 눈덩이가 다른 눈을 움직이게 할 때
산비탈의 작은 움직임이 주변 눈을 끌어내며 눈사태로 커질 수 있다. 반도체의 애벌랜치도 이런 연쇄 증폭에서 이름을 얻었다. 다만 결정 안에서 불어나는 것은 눈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전자와 정공의 수다.
pn 접합에 역방향 전압을 걸면 공핍층의 전기장이 강해진다. 처음에는 소수의 운반자가 만드는 작은 역전류가 흐르지만, 충분히 강한 전기장에서는 운반자가 이동하며 얻는 에너지가 커진다. 그중 일부가 충돌 과정에서 새로운 전자-정공 쌍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충돌 이온화다.
새로 생긴 전자와 정공도 전기장으로 가속되고, 다시 다른 쌍을 만들 수 있다. 이 증식이 강해져 역전류가 급격히 커지는 현상이 애벌랜치 항복이다. 한 전자가 처음부터 모든 전류를 나르는 것이 아니라, 이동 가능한 운반자를 늘리는 과정이 포함된다. 필요한 에너지는 외부 전압원이 공급한다. Utah State University의 애벌랜치 설명
충돌로 새 전하를 만드는 것과 얇은 장벽을 통과하는 것
역전류가 커지는 또 다른 길은 밴드 간 터널링이다. 접합 양쪽의 도핑이 강하면 공핍층이 얇아질 수 있다. 역바이어스를 걸어 에너지 밴드가 크게 기울어지면, p형 쪽의 채워진 가전자대 상태와 n형 쪽의 비어 있는 전도대 상태가 짧은 거리로 마주한다.
이때 전자는 고전적인 입자처럼 장벽 위를 넘어가는 대신 양자 터널링으로 반대편 상태에 전달될 수 있다. 이 기작에 의한 항복을 제너 항복이라고 부른다. 애벌랜치의 핵심이 가속과 충돌 이온화의 연쇄라면, 제너 기작의 핵심은 강한 전기장 아래 얇아진 에너지 장벽을 통한 전달이다.
도핑을 높여 폭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다만 ‘같은 전압이면 언제나 같은 항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터널링 확률은 장벽의 거리와 에너지 구조에 매우 민감하다. Nexperia의 두 항복 기작 설명
전압 숫자보다, 어디에 전기장이 몰리는가
같은 높이를 내려가도 완만한 경사와 급경사는 다르다. 접합도 같은 전압 차이를 얼마나 짧은 거리에서 감당하는지에 따라 국소 전기장이 달라진다. p형 쪽이 훨씬 강하게 도핑된 평면 p⁺n 접합에서, 약한 n형 쪽의 도핑이 균일하다고 하자. 강한 항복이 시작되기 전 공핍 근사에서는 최대 전기장을 다음처럼 쓴다.
Emax ≈ √[2qND(Vbi + VR)/εs]
q는 기본 전하량, ND는 약하게 도핑된 쪽의 이온화 도너 농도, Vbi는 내장전위, VR은 역전압의 양의 크기, εs는 반도체 유전율이다. 이 모델은 역전압뿐 아니라 도핑도 최대 전기장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준다. Hu 교재의 최대 전기장과 항복 설명
높은 전압을 버티는 소자는 낮은 도핑과 넓은 영역으로 전압을 분산시키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영역은 전류가 흐를 때 저항을 키울 수 있다. 내전압과 도통 손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실제 접합의 모서리와 곡률은 전기장 분포를 바꾼다. 평면 식의 값만으로 가장자리 항복까지 예측할 수 없다. 항복을 설명하는 임계 전기장 역시 모든 도핑과 온도에 똑같이 적용되는 재료 상수 하나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제너라는 제품 이름과 파괴라는 일상어를 구분한다
판매되는 ‘제너 다이오드’가 모두 순수한 제너 터널링으로 동작하는 것은 아니다. Nexperia는 애벌랜치가 지배하는 전압 기준 다이오드도 관례적으로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실리콘에서는 대체로 낮은 항복전압 쪽에서 터널링이 중요하고, 더 높은 쪽에서는 애벌랜치가 중요하다. 두 기작이 함께 기여하는 영역도 있다. Nexperia의 명칭 설명
온도 반응도 다르다. 보통 터널링이 지배하면 온도가 오를 때 항복전압이 낮아지고, 애벌랜치가 지배하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온도계수는 동작 전류와 두 기작의 혼합에도 영향을 받으므로, 이름만 보고 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전기적 항복과 영구적인 열손상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항복 영역의 전압 특성을 쓰도록 설계한 다이오드도 있다. 전류를 제한하고 허용 전력·온도 안에서 운용하는 조건이 붙는다. 항복전압을 넘으면 무조건 즉시 망가진다는 설명도, 그 전압에서 어떤 전류든 흘려도 된다는 설명도 모두 놓치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