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오드 안에는 전압이 있는데, 왜 배터리로 쓸 수 없을까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것
붐비는 방과 한산한 방 사이의 문을 열면 사람들이 퍼져 나간다. 전자가 많은 n형 반도체와 정공이 많은 p형 반도체를 이어도 농도 차이 때문에 전자와 정공이 확산한다. 다만 반도체에서는 움직이는 전하가 떠난 자리에, 결정에 고정된 이온화 도핑 원자의 전하가 남는다.
접합 근처의 n형 쪽에는 양전하를 띤 도너 이온이, p형 쪽에는 음전하를 띤 억셉터 이온이 드러난다. 이 전하들이 n형 쪽에서 p형 쪽으로 향하는 전기장을 만든다. 전자는 전기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을 받으므로, 이 전기장은 전자가 계속 n형에서 p형으로 퍼지는 것을 방해한다.
이 영역이 공핍층이다. 공핍은 물질이나 모든 전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동 가능한 전자와 정공이 주변보다 적고, 고정된 이온의 전하는 남아 있다. 자유 운반자의 기여를 무시하고 이온 전하만으로 전기장을 계산하는 것이 공핍 근사다. MIT의 접합 정전기학 강의
전류가 0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농도 차이는 확산을 만들고, 전기장은 드리프트를 만든다. 열평형에서는 전자에 대해서도, 정공에 대해서도 두 전류가 각각 상쇄된다. 입자들의 열운동이 멈춘 상태가 아니라, 한 방향으로 흐르는 순전류가 없는 상태다.
이때 접합 양쪽의 중성 영역 사이에 생기는 정전기적 전위차를 내장전위라고 부른다. 같은 반도체로 만든 접합에서 비축퇴 통계가 성립하고 도핑 원자가 충분히 이온화되었다면 다음 관계를 쓴다.
Vbi = (kBT/q) ln(NA ND / ni²)
kB는 볼츠만 상수, T는 절대온도, q는 기본 전하량, NA와 ND는 각 영역의 순 억셉터·도너 농도, ni는 진성 운반자 농도다. 도핑의 효과가 로그로 들어간다는 점이 핵심이다. 또한 ni도 온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앞의 T만 보고 온도가 오르면 내장전위가 반드시 커진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NPTEL의 평형 pn 접합 설명
얇은 공핍층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도핑 농도가 각 영역에서 일정하고 경계에서 급격히 바뀌는 평면 접합을 생각하자. 열평형에서 공핍 근사를 적용하면 전체 공핍층 폭 W는 다음과 같다.
W ≈ √[(2εs Vbi/q)(1/NA + 1/ND)]
εs는 반도체의 유전율이다. 한쪽의 도핑이 훨씬 강하면 공핍층은 주로 약하게 도핑된 쪽으로 뻗는다. 같은 양의 반대 전하를 확보하려면, 단위 부피당 이온이 적은 쪽에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핑을 높이면 폭을 줄일 수 있지만 대가가 있다. 같은 전위차를 더 짧은 거리에서 감당하면 전기장이 커지고, 공핍층이 얇아지면 같은 면적의 접합 정전용량도 커진다. 내전압과 회로가 충전해야 할 전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실제 공정의 도핑 분포가 완만하거나 접합 가장자리가 휘어 있다면 이 단순한 일차원 식만으로 전기장 집중을 예측할 수 없다. Chenming Hu 교재의 공핍층·접합 정전용량 설명
내부의 언덕과 외부에서 꺼내 쓸 에너지는 다르다
그렇다면 전압계를 연결하면 내장전위가 읽혀야 하지 않을까. 같은 온도의 열평형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다. 측정선을 붙이면 금속과 반도체 사이에도 접촉 전위가 생긴다. 회로 전체를 따라 보면 이 전위들이 접합의 내장전위와 상쇄되어, 외부 단자에서 사용할 기전력이 남지 않는다. 에너지 관점에서는 열평형의 페르미 준위, 즉 전자의 전기화학적 퍼텐셜이 전체에 걸쳐 일정하기 때문이다.
내부 전기장이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전기장은 실제로 운반자에 힘을 가한다. 다만 농도 차이에 따른 확산과 함께 평형을 이루고 있어 지속적으로 일을 꺼낼 수 없다. 태양전지가 전력을 내는 것은 빛이 전자와 정공을 만들어 이 평형을 깨고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다이오드에 있는 내장전위 자체가 소모되지 않는 연료인 것은 아니다. Hu 교재의 내장전위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