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 혼합: 오래 살아남은 집단의 고장률이 내려가는 이유
동일한 제품의 수명 데이터를 한데 합쳤더니 초기에는 고장이 많고 나중에는 잠잠해졌다. 이 곡선만 보면 오래 버틴 소자가 점점 튼튼해진 것처럼 해석하기 쉽다. 하지만 서로 다른 로트가 섞여 있다면 개별 소자의 성질이 변하지 않아도 전체 고장률이 내려갈 수 있다. 로트 혼합에서는 남아 있는 집단의 구성부터 살펴야 한다.
출하 때의 비율과 생존 집단의 비율은 다르다
가상 로트 A와 B에서 각각 같은 수의 소자를 골랐다고 하자. A의 수명은 평균 100시간, B는 평균 1,000시간인 지수 분포를 따른다고 정한다. 각 로트 안에서는 시간에 무관한 고장률을 가정하므로 A는 0.01/시간, B는 0.001/시간이다. 실제 제조 로트의 측정 결과가 아닌 혼합 효과를 보이는 계산 예다.
시간 t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각각 SA=exp(−t/100), SB=exp(−t/1000)이다. 무작위로 고른 한 소자는 처음부터 A 또는 B 중 한 로트에 속한다. 따라서 전체 생존 확률은 S=0.5SA+0.5SB로, 두 집단의 비율을 반영한 합이다.
100시간에서 A의 생존 확률은 약 0.368, B는 약 0.905다. 전체 생존 확률은 약 0.636이다. 처음에는 A가 절반이었지만 생존자 중 A의 비율은 SA/(SA+SB)로 약 28.9%가 된다. 500시간에서는 이 비율이 약 1.10%까지 내려간다. 빨리 고장 나는 로트가 먼저 줄어든 결과다.
일정한 로트 고장률이 변하는 전체 고장률을 만든다
전체 고장률은 생존자 중 각 로트의 비율로 가중한 값이다. 위 모델에서는 (0.01SA+0.001SB)/(SA+SB)다. 출발 시점의 0.0055/시간이 100시간에는 약 0.00360/시간, 500시간에는 약 0.00110/시간으로 내려간다.
A의 소자가 오래 살아서 B의 소자로 바뀌거나, 각 소자의 위험이 치유된 것은 아니다. 각 로트의 고장률은 그대로이고 생존 집단의 구성만 달라졌다. 전체 곡선의 기울기 변화만으로 물리적 열화 메커니즘이 시간에 따라 바뀌었다고 단정하면 이 효과를 놓친다.
혼합 평균 수명은 0.5×100+0.5×1,000=550시간이다. 그러나 평균이 550시간인 단일 지수 분포와 같은 수명 분포는 아니다. 평균 하나를 맞춰서 초기 고장과 장기 생존의 모양까지 일치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 비교에서 필요한 초기 불량률이나 보증 기간의 실패율을 별도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데이터를 나누기 전에 시험 조건을 맞춘다
NIST는 로트나 공급처처럼 서로 다른 모집단의 수명 자료를 비교하고, 공통 모델과 분리된 모델을 평가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제조 시점이나 위치 같은 설명 변수를 활용할 수도 있다. NIST, Comparing reliability of populations
다만 ‘로트 번호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차이가 증명되지는 않는다. 로트마다 시험 온도나 바이어스, 관측 기간, 실패 판정이 다르면 조건의 차이가 로트 차이처럼 보일 수 있다. 끝까지 살아남은 소자의 자료도 버리지 말고 실제 관측 기간과 함께 다루어야 한다.
또한 출하 비율이 바뀌면 과거의 혼합 곡선이 미래 출하 집단을 그대로 대표하지 못한다. 로트별 수명 분포가 그대로여도 두 로트의 비중이 달라지면 전체 결과는 달라진다. 집단을 합친 이유와 가중치를 기록하면 나중에 이런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로트 혼합을 의심할 때는 전체 곡선에 더 복잡한 함수를 맞추기 전에 추적 가능한 제조 집단과 동일 시험 조건을 확인한다. 개별 집단의 변화와 집단 구성의 변화를 구분하면, 이상한 고장률 곡선을 공정 문제로 연결할지 표본 구성 문제로 설명할지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