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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은 왜 빛에도 ‘뽑기 운’을 따질까

똑같은 도장을, 똑같은 종이에, 똑같은 힘으로 찍었는데 몇 장은 선이 끊긴다. 작업자가 졸았나 싶겠지만 반도체에서는 빛 자체의 ‘뽑기 운’이 문제일 수 있다.

회로를 찍는 EUV는 파장이 13.5나노미터인 빛이다. 여기서 빛은 매끈한 물줄기처럼 무한히 나눠지는 게 아니라, 광자라는 알갱이로 도착한다. 같은 에너지를 쏴도 파장이 짧은 빛은 광자 하나의 에너지가 커서 알갱이 수가 적다. 아주 작은 영역끼리 비교하면 받은 광자 수의 흔들림이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작은 화분마다 비를 똑같이 맞히려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소나기에서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빗방울 몇 개만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어떤 화분만 마를 수 있다. 회로에서는 이런 통계적 흔들림과 감광재의 화학 반응이 겹쳐 선 가장자리가 거칠어지거나, 선이 끊기거나, 붙으면 안 되는 선이 붙는다. 평균이 예뻐도 드문 실패 하나가 칩을 망친다.

그래서 High-NA EUV가 흥미롭다. 파장을 더 줄이는 대신 광학계가 받아들이는 각도를 넓혀 무늬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imec의 2026년 2월 정리에 따르면, 2025년에는 한 번의 노광을 활용해 중심 간 간격 18나노미터의 루테늄 금속선을 구현했다. 감광재 위의 사진만 선명한 게 아니라 실제 금속 가공까지 이어간 연구 성과다.

하지만 선명함이 우연을 없애지는 않는다. 광학계, 감광재, 식각 조건을 함께 맞춰야 하고, 연구용 구조의 성공이 곧 모든 제품의 양산 수율을 뜻하지도 않는다. 빛을 더 많이 주면 일부 흔들림을 줄일 수 있지만 노광 시간이 늘어 생산량과 비용이 얽힌다.

생산의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얼마나 작게 찍었나’ 다음에 ‘그걸 얼마나 자주, 얼마나 싸게 성공하나’. 반도체 공장의 정밀함은 운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운의 크기를 측정하고, 버틸 수 있는 범위 안에 가두는 능력에 가깝다.

더 읽기: imec, The case for High NA EUV (2026.02.26) · imec, Four decades of in-fab metrology and inspection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