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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갭 안의 페르미 준위에는 전자가 있을까

밴드 그림에는 전도대와 가전자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페르미 준위가 자주 등장한다. 전자는 허용된 밴드에만 존재한다면서, 금지된 구간에 선을 그어 놓는 모습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선 위에 전자가 있다는 뜻일까. 선이 올라간다는 설명은 전자 자체를 높은 곳으로 옮겼다는 말일까.

페르미 준위는 열평형에서 전자 상태의 점유 확률을 정하는 에너지 기준이다. 전자가 실제로 모여 있는 특정 높이로 해석하면 안 된다. 허용 상태가 없는 에너지 구간에도 이 기준은 정의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전자의 화학 퍼텐셜과 연결되며, 입자를 주고받을 때의 평형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선 위의 전자가 아니라 선을 기준으로 한 확률

열평형에서 에너지 E의 상태가 전자로 차 있을 확률은 f(E)=1/[1+exp((E−Ef)/(kT))]로 쓴다. Ef가 페르미 준위, kT가 온도에 따른 에너지 척도다. E와 Ef를 같은 에너지 단위로 넣어야 한다. 분모와 지수는 단위 없는 수다.

E=Ef이면 이 식은 1/2다. 그래서 페르미 준위를 점유 확률이 절반인 에너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에너지에 실제 허용 상태가 있어야 절반 점유된 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다. 밴드갭 안에 Ef가 있으면, 확률 함수의 기준이 그곳에 있다는 뜻이다. 허용 상태가 없는데 전자 집단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가상의 동일한 상태를 두고 E−Ef가 3kT일 때 점유 확률은 약 0.047이다. 반대로 −3kT라면 약 0.953이다. 페르미 준위보다 상당히 아래의 상태는 대부분 채워지고, 위의 상태는 대부분 비어 있다. 0K의 이상적 극한에서는 이 경계가 날카롭지만, 유한 온도에서는 폭을 가진 변화가 된다.

이 점유 함수는 MIT의 캐리어 통계 강의에서 상태밀도와 연결되어 전자·정공 농도로 이어진다. 페르미 준위 하나를 읽는 것과 농도를 계산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농도를 얻으려면 각 에너지에서 허용된 상태가 얼마나 있는지도 곱해야 한다.

밴드 그림의 세로축이 에너지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높이가 높다는 표현은 공간적으로 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가로축은 위치일 수 있고 세로축은 에너지이므로, 선을 지도로 읽기 전에 두 축의 물리량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를 구분하면 도핑으로 Ef가 이동하는 그림과 전기적 퍼텐셜 때문에 밴드가 휘는 그림을 혼동하지 않게 된다.

페르미 준위가 조금 움직일 때 농도가 크게 바뀐다

비축퇴 전도대에서는 전자 농도를 n=Nc×exp[−(Ec−Ef)/(kT)]로 근사할 수 있다. Nc는 전도대 유효 상태밀도, Ec는 전도대 바닥이다. Ef가 Ec에 가까워지면 전도대 상태들의 점유 확률이 늘어나 전자 농도가 커진다.

300K의 가상 시료에서 Ec와 Nc는 그대로이고 Ef만 0.10eV 상승한다고 가정하자. 농도 비는 exp(0.10/0.0259), 약 48이다. 에너지 기준의 변화는 0.10eV지만, 전자 수의 변화는 지수적인 비율로 나타난다. 이것이 밴드 그림의 작은 준위 이동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계산은 Ef를 움직일 전하 공급원이 있고 두 상태 모두 비축퇴 근사 안에 있다는 조건을 가진다. Ef를 전도대 안 깊숙이 밀어 올려도 같은 지수식을 계속 적용할 수는 없다. 점유 확률은 1보다 커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농도에서는 원래의 페르미-디랙 분포를 상태밀도와 함께 적분해야 한다.

또 도너를 늘렸다고 Ef가 원하는 만큼 독립적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도너의 이온화, 전자와 정공의 농도, 전하중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위치로 정해진다. 페르미 준위는 전하 수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넣는 외부 숫자가 아니라, 많은 상황에서 그 수지를 푼 결과다.

도핑이 없는 진성 반도체도 Ef가 반드시 밴드갭의 정확한 가운데에 있을 필요는 없다. n과 p가 같아야 하지만, 전도대와 가전자대의 유효 상태밀도가 다르면 같은 점유 기준까지의 에너지 거리를 다르게 잡아야 농도가 같아진다. 비축퇴 모델에서는 진성 Ef가 밴드 중간에서 (kT/2)×ln(Nv/Nc)만큼 이동한다. Nv는 가전자대의 유효 상태밀도다.

예를 들어 Nc가 Nv의 네 배인 가상 재료라면 300K에서 그 이동은 약 −0.018eV다. Ef가 밴드 중간보다 조금 아래에 놓여 전도대 점유를 줄이는 방향이다. 더 많은 전도대 상태를 더 작은 점유 확률로 채워 전자와 정공 수를 맞춘다. 진성이라는 말과 정중앙이라는 그림을 같은 뜻으로 외우면 이 작은 차이가 이해되지 않는다. 대칭으로 그린 입문 그림은 물리량의 정확한 대칭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평형에서 다른 재료를 연결하면

재료 A와 B를 접촉시키기 전에는 각자의 전자 분포와 페르미 준위를 따로 그릴 수 있다. 연결한 뒤 전자가 이동할 수 있으면 두 집단 사이의 입자 교환이 일어난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 열평형에 도달하면, 연결된 계에서 전자 교환을 더 진행시키려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 같은 온도의 평형을 하나의 페르미 준위로 표현하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모든 밴드 가장자리가 같은 높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하가 재배치되고 내부 전기적 퍼텐셜이 변해 밴드가 위치에 따라 휠 수 있다. 서로 다른 재료의 밴드 오프셋도 남는다. 평형의 페르미 준위가 일정하다는 사실과 내부 전기장이 없다는 결론은 연결되지 않는다.

농도가 위치에 따라 다르면 확산으로 전자가 이동하려 하고, 전기장에 의한 이동이 그것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 경우 개별 전류 성분은 존재하는 형태로 계산되어도 총전류는 0이다. 평평한 페르미 준위는 이런 균형을 표현하는 데 유용하다. MIT의 비균일 도핑 강의는 농도 기울기와 내부 전기장의 관계를 다룬다.

여기서 단자 전압과의 관계도 조심해야 한다. 전압계는 두 단자를 연결한 측정 경로에서 차이를 읽는다. 내부 밴드 그림의 에너지 차이 하나를 q로 나눴다고 모든 구조의 외부 전압계 값이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접촉과 측정 경로를 포함한 전기화학적 기준을 함께 봐야 한다. 내부 에너지 지도를 읽는 목적과 외부 회로의 전압을 예측하는 목적은 계산의 범위가 다르다.

빛이나 전류가 들어오는 순간에는 한 선으로 부족하다

페르미 준위 하나가 모든 전자 상태의 점유를 표현하는 설명은 열평형에 기반한다. 빛을 쬐거나 전압을 걸어 전자·정공을 주입하면 비평형이 된다. 그렇다고 곧바로 모든 입자가 임의의 분포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각 밴드 안에서 에너지 분포가 빠르게 정리되어 준열평형을 이루는 경우에는 전자와 정공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를 준페르미 준위라고 부른다. 이름이 비슷해도 평형에서 하나였던 기준을 무조건 두 개의 평형으로 바꾼다는 뜻은 아니다. 각 캐리어 분포에 대한 근사를 따로 적용하는 것이다. 강한 전계로 에너지 분포가 크게 왜곡되면 이 단순화의 범위도 점검해야 한다.

밴드 그림을 볼 때 평형인지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평형 소자의 그림에서 준위가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과 평형 소자의 일정한 Ef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전류나 광전압의 의미를 잘못 읽기 쉽다. 그림에 표시된 선의 이름과 동작 조건이 함께 필요하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페르미 준위가 밴드갭 안에 있어도 모순은 없다. 그 선은 전자의 주소가 아니라 점유를 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밴드 그림에서는 먼저 허용 상태의 위치를 읽고, 다음에 페르미 준위로 그 상태가 얼마나 차 있는지 읽으면 된다. 평형 여부와 온도를 확인한 뒤 상태밀도까지 연결하면, 준위의 작은 이동이 왜 큰 농도 변화가 되는지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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