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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갭 한 숫자로 반도체의 쓰임을 정할 수 있을까

반도체 재료를 소개하는 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숫자 중 하나가 밴드갭이다. 좁으면 전류가 잘 흐르고, 넓으면 전압을 잘 버틴다고 간단히 외워 두기 쉽다. 그런데 같은 밴드갭을 가진 두 재료로 소자를 만들어도 누설, 발광, 전류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숫자는 무엇을 알려 주며, 어디에서 설명을 멈춰야 할까.

밴드갭은 전자가 차지할 수 있는 가전자대의 꼭대기와 전도대의 바닥 사이 에너지 간격이다. 결정 안의 전자는 아무 에너지나 가질 수 없고 허용된 에너지 상태를 차지한다. 두 밴드 사이의 금지된 구간을 에너지 축에서 잰 것이 밴드갭이다. 여기서는 일정한 온도에서 균일한 벌크 반도체를 생각한다. 특정 제품의 특성을 예측하려는 계산은 아니며, 도핑이나 결함이 많아 밴드 자체가 크게 변하는 상황은 뒤로 미룬다.

에너지 간격이 캐리어 수에 들어가는 자리

열평형에서도 일부 전자는 가전자대에서 전도대로 올라간다. 전도대로 올라간 전자는 전류를 운반할 수 있고, 가전자대에 남은 빈자리는 정공으로 다룬다. 정공은 양의 전하를 가진 운반자처럼 움직인다. 도너나 억셉터의 영향이 없는 진성 반도체라면 전자와 정공이 쌍으로 생겨 두 농도가 같다.

밴드 가장자리의 상태를 포물선으로 근사하고, 캐리어가 충분히 비축퇴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면 진성 캐리어 농도 ni는 다음처럼 쓸 수 있다.

ni = √(Nc × Nv) × exp[−Eg / (2kT)]

Eg는 밴드갭, Nc와 Nv는 각각 전도대와 가전자대의 유효 상태밀도다. 유효 상태밀도는 해당 온도에서 캐리어가 차지할 수 있는 상태 수를 농도의 형태로 요약한 값이다. k는 볼츠만 상수이고 T는 절대온도다. Eg와 kT의 에너지 단위를 같게 써야 지수 안의 값이 단위 없는 수가 된다.

이 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밴드갭이 지수 안에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간격을 조금 바꾸는 일이 농도에는 큰 비율 변화로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앞에 붙은 상태밀도도 재료에 따라 다르다. 밴드갭만 같다고 진성 농도가 꼭 같은 것은 아니다. MIT의 반도체 상태밀도 강의와 캐리어 통계 강의에서 이 두 요소가 농도를 만드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계산으로 지수의 크기를 보자. 두 가상의 재료에서 Nc와 Nv가 같고, 밴드갭만 0.20eV 차이 난다고 가정한다. 300K에서 kT는 약 0.0259eV다. 밴드갭이 큰 재료의 ni를 작은 재료의 ni로 나누면 exp[−0.20/(2×0.0259)], 약 0.021이 나온다. 동일한 상태밀도라는 가정 아래 진성 농도가 약 48분의 1이 되는 셈이다.

이 결과는 실리콘과 특정 화합물의 실제 비교값이 아니다. 다른 조건을 고정했을 때 에너지 간격의 차이가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는지 보여 주는 계산이다. 온도가 오르면 kT가 커져 열적 생성이 쉬워지고, Nc와 Nv도 변한다. 더구나 Eg 자체도 일반적으로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상온 표에 적힌 Eg 하나로 고온 누설을 그대로 외삽해서는 안 된다.

같은 가상 비교를 400K에서 반복하면 kT는 약 0.0345eV이고, 농도 비는 약 0.055가 된다. 밴드갭 차이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단순화 아래 두 재료의 차이가 약 18분의 1로 줄어든다. 이 비율이 커졌다고 넓은 밴드갭 재료의 농도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비교의 분모도 온도와 함께 달라진다. 온도별 절대 농도를 보려면 두 재료 각각의 전체 식을 계산해야 한다. 비율과 절대량을 구분하면 상온에서 유리한 정도가 고온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다.

단위도 해석의 경계를 만든다. 1eV는 전하량이 전자 한 개의 크기인 입자가 1V의 전위차를 지나며 얻는 에너지다. 그래서 eV와 V의 숫자가 나란히 등장하지만, 밴드갭을 그대로 소자의 동작 전압으로 바꿀 수는 없다. 실제 단자 전압은 내부 전위 분포, 캐리어 주입, 저항에 걸리는 전압을 함께 포함한다. 에너지 축에 표시한 재료의 간격과 단자 사이 전압은 연결되면서도 같은 물리량은 아니다.

빛에서도 밴드갭은 문턱의 역할을 한다

광자가 전자를 다른 밴드로 옮기려면 에너지를 제공해야 한다. 광자 에너지는 파장이 짧을수록 크다. 밴드 사이 천이가 가능한 에너지의 기준을 가늠할 때 밴드갭이 유용하다. 에너지를 eV, 파장을 nm로 쓰면 광자 에너지는 대략 1240/파장이다.

밴드갭이 1.20eV인 가상의 재료라면 같은 에너지의 광자 파장은 약 1030nm다. 이를 두고 곧바로 “1030nm보다 짧은 빛을 모두 완벽히 흡수한다”고 말하면 범위를 넘어선다. 밴드갭은 에너지 조건을 알려 줄 뿐, 그 조건을 만족하는 천이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빛은 에너지와 함께 운동량도 전달한다. 재료의 밴드 구조에 따라 전자가 이동해야 하는 시작점과 끝점의 운동량 관계가 달라진다. 어떤 재료에서는 격자 진동의 도움까지 필요하다. 동일한 에너지 간격이라도 빛을 흡수하거나 내는 확률이 달라지는 이유다. MIT의 화합물 반도체 개요는 에너지-파수 밴드 구조와 광학적 성질을 함께 다룬다.

또 밴드갭 안에 결함 준위가 있으면 이상적인 밴드 사이 천이 외의 경로가 열린다. 막 두께가 충분하지 않으면 흡수가 가능한 빛도 일부 통과한다. 실제 광소자의 응답을 읽을 때는 문턱과 흡수계수, 두께, 결함 경로를 구분해야 한다. 밴드갭이 출발점으로 유용한 것과 최종 답으로 충분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차이는 실험 그래프에서도 드러난다. 광학 흡수가 시작되는 부근을 한 직선으로 외삽해 얻은 간격은 사용한 천이 모델과 피팅 구간에 의존한다. 전기적 측정의 온도 기울기에서 추정한 활성화에너지가 같은 숫자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전자는 결함이나 접촉 장벽을 통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얻은 ‘갭’ 수치를 비교할 때는 먼저 무엇의 문턱을 측정했는지 읽어야 한다.

넓은 밴드갭의 이점을 실제 소자로 옮길 때

처음의 직관으로 돌아가 보자. 넓은 밴드갭은 같은 온도에서 열적 캐리어 생성을 억제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고온에서도 원치 않는 캐리어가 적게 생기는 방향의 물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 누설전류에는 접합의 전계, 표면 상태, 결함, 터널링, 접촉부가 관여한다. 진성 농도 식이 작은 값을 준다고 모든 누설 경로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압을 견디는 능력도 비슷하다. 밴드갭은 충돌 이온화와 관련된 중요한 물성 중 하나지만, 소자의 항복전압은 재료 이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도핑 프로파일과 전계가 몰리는 모서리, 절연 구조, 소자 두께가 실제 전압을 결정하는 데 함께 들어간다. 재료의 가능성을 소자 구조가 얼마나 실현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좁은 밴드갭이면 전도도가 무조건 높다는 결론도 성립하지 않는다. 전도도는 캐리어 농도뿐 아니라 이동도에 달려 있다. 전자를 쉽게 만들 수 있어도 자주 산란되면 전류 수송에 불리할 수 있다. 도핑된 반도체에서는 공급된 캐리어가 진성 캐리어보다 훨씬 많을 수 있어, 밴드갭 하나의 설명은 더 제한된다.

재료 표를 읽을 때 “밴드갭이 얼마인가” 다음에 붙일 질문은 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고온 누설이 관심이면 사용 온도에서의 밴드갭과 실제 누설 경로를 봐야 한다. 빛의 파장이 관심이면 에너지 문턱을 계산한 뒤 천이 확률과 두께를 살펴야 한다. 전력소자라면 전계와 접합 설계까지 이어 가야 한다.

같은 밴드갭의 재료가 서로 다른 소자가 되는 이유는 에너지 간격 외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밴드갭은 캐리어를 만들거나 밴드 사이로 옮기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기준으로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 기준으로 첫 계산을 하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다른 물성과 구조를 더하면 재료의 장점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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