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을 한 달 먼저 찾으면, 반도체 공장에 무슨 일이 생길까
책을 다 인쇄한 다음에야 첫 페이지의 오타를 발견했다. 수만 권이면 속이 쓰리다. 반도체에서는 비슷한 일이 훨씬 복잡한 형태로 벌어진다. 수많은 공정을 다 지나 전기 검사를 했는데, 앞 단계에서 생긴 작은 결함 때문에 칩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는 ‘마지막에 나쁜 제품을 골라내는 일’만이 아니다. 잘못된 조건으로 다음 웨이퍼를 계속 만들지 않도록, 가능한 한 일찍 단서를 잡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틀린 요리에는 더 비싼 재료를 얹지 않는 편이 낫다.
문제는 눈과 속도가 싸운다는 데 있다. 빛을 이용하는 측정은 빠르지만 아주 작은 결함을 자세히 보는 데 한계가 있다. 전자빔은 미세한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 강하지만 천천히 훑는다. 거대한 운동장에서 모래알의 흠집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좋은 확대경만 있다고 일이 빨리 끝나지는 않는다.
최근 발전의 한 방향은 확대경을 여러 개 동시에 쓰는 것이다. ASML은 2026년에 공개한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 전자빔 25개를 사용하는 HMI eScan 1100을 설명했다. 회사에 따르면 첨단 로직·DRAM 검사에서 단일 빔 장비보다 처리량이 10배 높고, 공정 마지막의 전기 검사와 비교해 수율을 개선할 단서를 최대 한 달 반 먼저 얻을 수 있다.
이 숫자는 제조사가 제시한 해당 장비와 적용 조건의 결과다. 모든 결함을 모든 공정에서 10배 빨리 찾는다거나, 웨이퍼 전 영역을 빠짐없이 초고해상도로 검사한다는 뜻은 아니다. 웨이퍼 여러 위치의 칩을 살펴 결함의 분포를 잡는 것과 모든 점을 다 보는 것은 다르다. 장비는 고객 적용이 진행되는 단계지만, 공정마다 맞는 검사 조건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남는다.
검사 결과의 가치는 사진이 선명하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장비와 공정에서 문제가 시작됐는지 좁히고, 다음 생산 조건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많은 오탐도 작업을 늦추므로 ‘발견했다’ 다음에는 ‘정말 문제인가’가 따라온다.
생산의 시간은 달력으로만 재지 않는다. 결함을 알아채기 전까지 몇 장을 더 만들었는지도 시간의 값이다. 작은 흠집을 일찍 보는 눈이 공장의 큰 낭비를 막는 이유다.
더 읽기: ASML, Annual Report 2025, p.18 (2026년 공개) · 원리: ASML, Measuring accu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