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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에 원자를 심고 나서, 왜 다시 뜨겁게 달굴까

원자를 넣는 것과,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회의실에 사람을 들여보냈다고 회의가 바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자리를 잡고 역할을 맡아야 한다. 실리콘에 도펀트라는 불순물 원자를 넣는 일도 비슷하다. 원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와, 전기적 성질을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실리콘의 전도성을 조절할 때 붕소나 인 같은 원소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도핑 방법인 이온 주입은 전하를 띤 원자를 가속해 웨이퍼 안에 넣는다. 주입량과 에너지를 조절하면 원자의 수와 깊이 분포를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르게 들어온 이온은 원래 있던 원자를 밀어내 결정에 손상을 남길 수 있다.

전기가 통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열처리

일반적인 실리콘 도핑에서 도펀트가 전자나 정공을 공급하려면 적절한 격자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주입 직후에는 모든 원자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열처리를 통해 결정 손상을 줄이고 도펀트가 전기적으로 활성화되도록 한다. 정공은 전자가 비어 있는 상태가 양전하처럼 움직이는 운반자다.

이것이 ‘활성화’다. 주입량을 두 배로 늘렸다고 유효한 전하 운반자도 반드시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자리를 차지했는지, 결함과 어떤 상태로 결합했는지가 중요하다. 또한 열처리가 모든 손상을 완벽하게 지워준다는 보장도 없다. 조지아공대 Alan Doolittle 강의, 20쪽

그런데 열은 원자를 제자리에 앉히는 일만 돕지 않는다. 원자가 주변으로 이동하는 확산도 빠르게 만든다. 얕고 선명하게 만든 도핑 분포가 넓어지면, 의도했던 접합의 위치와 소자의 전기적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

온도와 시간은 서로 대신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는 아니다

단순한 평형 확산 모델에서 확산계수의 온도 의존성은 아레니우스 관계로 나타낸다.

D(T) = D₀ exp[−Eₐ/(kBT)]

D는 확산계수, D₀는 계수, Eₐ는 해당 확산 과정의 활성화 에너지, kB는 볼츠만 상수, T는 절대온도다. 여기서 ‘활성화 에너지’는 원자 이동에 관계된 에너지 장벽이며, 앞서 말한 도펀트의 전기적 활성화 비율과 같은 뜻이 아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확산계수가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빈 공대 H. Ceric의 확산 모델 설명

온도와 D가 일정하고, 경계나 농도에 따른 변화 등을 무시한 1차원 확산에서 이동 거리의 제곱평균제곱근은 다음과 같다.

L_rms = √(2Dt)

L_rms는 한 방향으로 얼마나 퍼졌는지 나타내는 통계적 거리, t는 시간이다. 모든 원자가 정확히 이 거리만큼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온도에서 시간을 4분의 1로 줄이면 이 거리 척도는 절반이 된다. 처음부터 폭이 있던 주입 분포라면, 이 값은 최종 접합 깊이가 아니라 추가 확산의 척도로 해석해야 한다.

급속 열처리의 목표는 ‘뜨겁고 짧게’ 그 자체가 아니다

급속 열처리인 RTA는 짧은 시간의 온도 이력을 이용해 필요한 활성화와 손상 회복을 얻으면서 불필요한 확산을 제한하려는 방법이다. 온도를 높여 처리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높인 온도는 D도 키운다. 따라서 시간이 짧다는 사실만으로 확산이 적다고 판단할 수 없다.

실제 온도는 올라갔다 내려간다. 확산을 평가하려면 최고온도에 머문 시간뿐 아니라 가열과 냉각 중의 기여도 합쳐야 한다. 활성화와 결함 회복, 확산이 모두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므로, 한 과정을 충분히 끝내는 조건이 다른 과정에는 과할 수 있다.

더구나 이온 주입으로 생긴 결함이 한동안 확산을 촉진하는 ‘일시적 확산 증대’도 있다. 이때는 평형 상태의 D 하나를 넣은 계산이 실제 분포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SLAC·SSRL 연구진의 결함과 확산 설명

좋은 열처리 조건은 온도와 시간을 작게 만드는 조건이 아니다. 필요한 전기적 활성화와 결정 품질을 확보하면서, 원자가 이동해도 되는 거리 안에 도핑 분포를 남기는 조건이다.